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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코카스파니엘의 이야기 본문

단편

[미사와] 코카스파니엘의 이야기

히이ヒィー 2016. 6. 12. 14:48

*미사와 홈플2에 낼 예정인 회지입니다.

*.....홈플2에 참고 하고 싶슴다..............

*오랜만에 글 올림...............한달 이상은 잠수탄거 같은데(코 후비적후비적)

*일단 글 내용의 반 정도 올립니다.

*사실 ㄴㅇㅂ블로그에 올린적이 있는 글.

 

 

 

안녕? 나는 코카스파니엘. 인간들이 말하는 3대 악마견 중 하나이지.

“이 똥개새끼 어디에 쳐 박혀있는 거야?”

지금 뭐하냐고? 집주인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꼬리를 흔들며 애교 있게 반기기는커녕 나는 오늘‘도’ 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몸을 숨기고 있다.

코카스파니엘의 이야기.

지금 현재 주인을 만나기 전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코카스파니엘이라고 해도 비글과 맞먹는 것 같다고 많이 들었어. 그 비글이 어떤 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내 생활에 엄청 만족하고 있었지.

하루 일과는 이러해.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는 주인 집 아들놈의 바지자락을 뜯어질 정도로 꽉 물고 서로 씨름을 하지. 놓으라고 옷자락이 물린 쪽 다리를 흔들어도 나는 절대 놓아주지 않아. 그러다 때리면 어쩌냐고? 그럴 땐 그냥 다리를 물어버리지. 그렇기 때문에 이놈도 함부로 때리지는 못해. 그렇게 둘이서 씨름을 하다가 투두둑- 옷자락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면 그제 서야 옷을 놓아줘. 오늘도 아들 녀석에게서 승리 했다는 우월감의 소리가 참으로 명쾌하거든.

“이 새끼가!! 엄마!! 엄마!!!!!!!”

그리고 그 놈이 기겁하면서 부엌에 있는 주인아주머니를 부르면 안방으로 들어가. 그리고 안방 욕실에서 주인아저씨가 씻고 있는 사이에 어제 저녁 아주머니가 깨끗이 다려놓았을 아저씨의 흰색 와이셔츠를 질겅질겅 씹고 밟으며 어지럽히고, 안방 밖에선 아주머니가 아들놈의 뜯겨진 바지를 보며 ‘이 똥개 새끼가 또 저질러 놨어!!’하고 고함을 지르겠지.

나는 수컷이지만 우아함을 가진 고귀한 생명체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아. 보기와 달리 순해 빠진 얼굴로 눈망울을 촉촉이 적시면 이 동네에서 제일 성질머리 더러운 주인아주머니라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욕만 중얼거리고 끝내지. 아니, 오히려 화를 내면 역효과가 난다는 걸 잘 아니까 하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는 것 밖에 하지 못해.

안방에서 셔츠를 가지고 놀고 나와 부엌으로 향하면 오늘도 어김없이 내 아침밥으로 만엔짜리 외제 고급 사료가 담겨 있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인간들이 말하는 미식가? 그런 것일지도 몰라. 만엔 이하의 사료는 절대 입에 대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배고픔에 짜증이 극에 달하면 부엌의 식기를 깨트리기까지 하지. 아들 녀석이 쓸 떼 없이 입이 고급지다고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을 땐 녀석의 엉덩이를 콱 깨물어주었어.

아침밥을 먹고 나면 안방에서 씻고나온 주인아저씨가 기함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들을 겨우 달래서 학교를 보낸 아주머니가 쪼르르 안방으로 들어가. 그리고 엉망이 된 셔츠를 보고 소리를 지르지.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난 아들 녀석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워. 그리고 발톱으로 침대 시트를 긁기 시작해. 방 한 견엔 나의 잔해 물들이 있어. 아주머니가 했던 곳에다가 하라고 놓아둔 것인데, 나는 금방금방 잘 질리는 편이기 때문에 새것이 아주 좋아. 그래서 그런지 아들 놈 침대의 시트는 일주일도 못가서 새로 바뀌어.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한마디로 난 이 집에서 제일 고귀한 존재로써 우뚝 서있어. 이런 나를 주인아저씨는 버리라고 하지만 애완용 강아지를 버리는 것만으로도 요즘에 얼마나 욕을 먹는지 아는 주인아주머니는 그러지 못하지. 게다가 집안 자체가 워낙 잘사는 집안이라보니 기르고 있는 애완견이 나쁘게 잘 못 되면 이미지 버리기 십상이라는 걸 너무 잘 알아. 있는 집 주인들이 자기 과시용으로 한 마리씩은 키운다는 애완용 개를 사기위해 나를 골라 샀을 때부터 이미 아주머니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그러나 중요한건 내가 이렇게 지랄 맞을 줄은 몰랐던게 함정이었을지도 몰라.

아들놈이 또 내가게임 팩을 망가트렸다면서 꽥꽥 거리는 날엔 난 코웃음을 치며 폭신한 고급 스웨터로 만들어진 내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아. 넌 인간이라는 녀석이 늘 게임만 해서 되냐? 내가 알기론 인간의 학생은 쪽지시험을 포함한 중요한 시험을 치는 학습과정이 있다고 들었어. 특히 녀석이 시험지를 숨기는 걸 보고 그걸 주인아저씨 앞에 가져다 놓으면 저 녀석은 그날 죽음이었지. 그리고 나에게 화풀이하면 녀석의 엉덩이를 꽉 물고 한 참을 놓아주지 않아. 아마 녀석의 엉덩이엔 내 수십 개의 이빨 자국들이 영광의 상처로 남겨져 있을 거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왠만한 기본 지식은 습득하고 있을 정도로 머리가 좋다고 보면 된다. 오히려 주인 아들 놈 보다 영리하다는 거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거울 앞에 서서 아름다운 내 모습을 보며 이건 귀여운 표정. 슬픈 표정 등등.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한 내 매력을 뽐내는 연습 또한 거르지 않아.

주인아주머니가 매달 사서 읽는 패션 잡지를 취미로, TV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을 들으며 몰랐던 문화들을 배우기도 하고, 그렇게 나 자신을 항상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그런 충실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 옛말로 표현하면 난 상전이 따로 없다고 나 할까? 누구도 날 막을 수 없어~

“어머, 어서오세요. 찾아오느라 힘드시진 않으셨어요?”

“하하, 괜찮습니다. 길도 별로 복잡하지 않더군요.”

킁킁, 낯선 사람의 냄새. 지금까지 맡아 본 적 없는 냄새에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현관에 들어선 두 명의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어.

주말인 오늘, 아침 일찍부터 평소와 다른 낌새를 보인 주인들의 행동은 아마 손님이 오기 때문이었나 봐. 화장을 두껍게 하고 딱 달라붙는 검은 원피스에 악세사리로 힘을 빡 준 아주머니가 평소보다 더 꾸민 것 같다고 느낀 건 두 남자가 꽤…. 강아지 눈으로 보는 시점에서도 참 훤칠하게 생겨서 일지도 모른다. 아니, 뭐 외견 때문에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머니, 너무 돼지 목에 진주 같은 차림인데.

“오오, 어서와. 우리가 찾아가도 되는 건데 일부로 찾아와 줘서 고마워.”

“무슨 소리야. 받으러 온 사람이 찾아와야지.”

신문을 읽고 있던 주인아저씨가 손님 중 나이가 좀 있는 남자와 친분 있는 인사를 하고, 그 뒤로 주인 아들 또래로 보이는 안경 쓴 남자가 허리를 숙이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뭐랄까 주인 아들놈과 그 놈들의 친구들을 가끔씩 보아오다가 그런지는 몰라도. 이 놈, 알 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사람들이 이걸 위화감이라고 표현하던가.

아주머니의 무릎 위에 얌전히 앉아 오늘도 집을 찾아온 손님에게 나의 우아함을 뽐낸다. 내가 손님이 있는 앞에서는 지랄 맞게 굴지는 않지. 체면이 있으니까. 그나저나 아주머니 향수도 겁나 빡세게 뿌린 모양이다. 코가 얼얼하다.

“그나저나 요 녀석 자네가 말한 것 보다 훨씬 얌전한데?”

“호호, 야..얌전 할 때도 있어요.”

“응, 그렇지.”

보아하니 손님 중 나이가 많은 남자는 주인아저씨의 친구이고, 젊은 쪽은 그 아들이었다. 아들놈은 아주머니가 준 차를 홀짝이며 아저씨나 아주머니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하기만 하고 자세하나 흐트러짐 없이 곧게 앉아있었고, 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세 명의 어른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이곳을 찾아 온 목적은… 나를 입양하기 위해서라나? 입양이 뭐더라 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저를 칭찬하는 나이 많은 남자의 말에 괜히 우쭐해지지만 주인아주머니나 아저씨가 애써 웃으며 같이 칭찬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아주머니만 따로 자리에서 일어나 분주해지기 시작하고, 나는 아주머니의 하는 행동들을 소파위에서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집이 되는 물건들과 가지고 놀아 라고 사준 장난감들. (솔직히 가지고 놀았다고 할 수 없는 게, 늘 집안의 물건들을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제 털을 손질할 때 쓰는 도구를 비롯해 옷가지들을 챙기고 있는 것들을 보며 이상한 기분에 주인아저씨 쪽을 보니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목소리가 조금 전 보다 더 하이텐션인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인가.

“짐이 조금 많긴 한데 차에 실으면 괜찮지요?”

“네. 감사합니다.”

응? 갑자기 날 외출할 때 넣는 캐리어 가방을 가지고 온 아주머니가 나를 얼른 집어넣는다. 순식간의 일에 어리둥절해 있자 가방을 집어든 주인아저씨의 친구가 저를 보며 미소 짓는다.

“이제부터 잘 지내보자.”

뭐라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 보았을 때 나를 입양 어쩌고 한 것은 아마 나를 이 사람들에게 떠넘기려는 것임이 분명하다. 당황하여 어떻게든 이 가방 속에서 빠져나가보고자 낑낑, 하고 불쌍한 소리를 흘리지만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우리 집 강아지가 놀라서 그런 것 같다며 익숙해지면 괜찮아 질 거라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야 이 인간들아!!

“다이치! 손님 가시는데 인사는 해야지.”

주인아주머니가 아들 녀석을 부르자 엉덩이를 손으로 살짝 몇 번 긁으며 녀석이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아니, 주인아주머니를 비롯해 아저씨까지 들떠있는 감정이 너무나도 쉽게 느껴져서 억울한 기분까지 든다.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다. ‘잘 가라 이 웬수 덩어리야!’라고 귓가에 울리는 듯한 착각이 느껴질 정도니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내가 사는 환경이 바뀐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내 천하임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으르렁 거렸다.

이전의 집 보다는 크진 않지만 작은 편이고, 뭐랄까 쎄 한 것이 사람 냄새가 덜한 집이었다. 며칠정도는 얌전히 새로운 집안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주인이 된 그 둘을 경계하며 살펴보았다.

아주머니는 안 계시나 싶었으나 빨래나 청소, 요리를 아들 녀석이 책임지고 하는 것을 보아 느낀 것은 이 집은 아저씨와 아들 두 사람만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극히 필요 이상으로 하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조용조용하게 지내는 듯 했다.

“휴가도 끝이고, 내일부터 다시 바쁘겠네.”

“…적당히 놀아라.”

“…눈에 띌 만한 사고는 안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하아-”

아저씨가 알 수 없는 한숨을 한 번 내쉬며 또 다시 ‘적당히 해라.’라는 말만 남기고 빈 그릇을 싱크대에 두고서 부엌을 나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아들놈을 바라보았다. 아저씨의 말이 별 개의치 않은 듯 밥을 먹고 있는 모습에 나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 집을 점령하기 위한 기회를 말이다.

며칠을 살펴본 결과 집의 실질적 주인은 아저씨이나 모든 살림은 아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솔직히 전 주인 집 아들 놈 보다 착실하다고 해야 하나, 안경을 쓴 이미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멍청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전 주인 아들과는 전혀 다른 케이스라 어떻게 하면 우위를 점령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뭐야. 내일 아침 일찍 나가는 거 아니었어?”

“회사에서 연락이 왔으니 어쩔 수 없지. 카즈야. 강아지 굶기지 마라.”

“…상황 보고.”

“너…?!”

“하하, 장난~”

“……이거 강아지 밥 값.”

“뭐야, 만 엔? 강아지 밥값이 얼마나 한다고 이렇게나 큰돈을 줘?”

“어제 전화가 와서 지금 먹고 있는 사료 아니면 먹지도 않는다더라.”

“……”

“그럼 갔다오마.”

작은 트렁크가방을 손에 쥐고 문 밖을 나가는 아저씨를 배웅하고 어색하진 집안 공기에 나는 아들놈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내 밥값이 될 돈을 주머니에 넣더니 부엌으로 들어가고 곧 그릇을 씻고 정리하는 소리를 들으며 내 집에 있는 편안한 쿠션 위로 몸을 던졌다. 잘은 모르겠으나 여행용 트렁크가방을 들고 나갔으니 아저씨는 당분간 오지 않는다고 봐야 된다. 그렇다면 이 집엔 나와 아들. 둘 뿐이라는 건데. 어차피 저 녀석 학교 다녀오면 이 집안은 전부 내 것이 된다. 그 사이를 노릴까 싶지만 그건 사내자식으로 태어나서 찌질 하게 우위를 점령하는 것과 마찬가지 않은가. 정정당당하게 맞서 이겨야 진정한 사내지!

기회는 오늘 잠들기 전이다. 내일부터 새로운 환경에서 나의 천하가 되는 것이다. 목욕까지 끝낸 아들 녀석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살금살금 방 문 앞까지 다가간다. 다행이 문이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아서 쉽게 휙, 들어가고 보니 책상에 앉아있는 녀석의 뒷모습이 보인다. 자아- 이제 어쩐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한 마리의 개처럼… 아니지 나 강아지니까 개가 맞지. 녀석과 가까운 위치에서 보기 위해 침대 위로 살며시 올라서 책상과 근접한 위치로 침대 모서리 쪽에 서서 녀석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학교 숙제라도 하고 있는 것인지 진지한 모습이 전 주인 아들놈과 너무 다른 이미지라 어색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우위를 정하는 것은 애매해 질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앞발의 발톱을 세운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지만 안경을 쓴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살인미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이기면 장땡 아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노리는 것은 놈의 어깨. 감춰져 있던 이빨을 드러냈다. 내가 아직 몸집이 작아서 그렇지 송곳니의 날카로움 만큼은 끝내준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전 주인의 아들에게 영광의 상처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이 송곳니 덕분이란 말이지. 전 주인 아들 하고 분위기는 다르지만 어른들 앞에서 인상 좋게 웃던 모습이나 집안에서 보이는 행동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힘든 상대는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르르-”

왕! 뒷발에 힘을 주고 점프하여 아들놈의 어깨를 향해 날았다. 응, 날았다. 그리고 착지한 곳은 아들의 어깨가 아닌 침대 위라는 것과 몸 한 구석이 욱신거리는 아픔이 동반하여 눈앞이 순간 반짝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라?

“이 개새끼가. 야, 방해 말고 꺼져.”

조금 전과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진 아들놈의 모습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너 누구냐?

 

 

 

미유키 카즈야.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이 되는 아들이 되시겠다.

“야, 개새끼. 밥 먹어.”

오늘도 내 밥그릇에 일정한 양으로 담겨진 2천엔 짜리의 싸구려 사료가 담기고, 나는 그것을 허겁지겁 입 안으로 넣기 바빴다. …그렇다. 난 이 집 아들 놈. 미유키 카즈야에게 온갖 곤욕이란 곤욕을 다 치르고 내가 살기 위해선 짜져야 된다는 패배자가 되어 있었다.

우위를 점령하기 위한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 그 날 저녁 이후로, 난 어떻게든 나의 천하를 만들기 위해 정말 개지랄을 떨었다. 전에 있던 집에서 하던 행동들을 일삼았고, 그런 나를 녀석은 거침없이 발로 차거나 물려고 달려들면 오히려 내 목을 한 손으로 잡아채기까지 했다.

“쥐 새끼만한게 어디서 깝쳐 깝치긴.”

“낑- 끼잉-”

“너 오늘 밥 없어.”

흥, 없다면 더 설칠 테다! 라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도 무색하게 녀석은 잘 쓰지도 않는 방에 나를 가두었다. 원체 집안의 사람의 온기가 없는 집인지라 잘 쓰지도 않는 방에 있으니 한기가 올라오고 불도 들어오지 않아 어둡기만 한 공간속에서 문을 긁으며 얼마나 끙끙거렸는지.

조금이라도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 맺힌 얼굴을 하면 사람들은 전 집 주인을 비롯해 내가 한 행동에 별 수 없이 용서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그러나 미유키 카즈야는 달랐다. 내가 불쌍한 표정을 짓던 말든 ‘개새끼가 용쓴다 용써.’라며 발로 밀어냈다.

이거 동물 학대 아님? 동물보호협회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라고 외쳐봤자 미유키 카즈야에겐 개 짓는 소리 밖에 안 될 것이다. 내가 인간이었다면 주저 없이 저 놈을 신고하는 건데!!! 동네 사람들!! 나 여기서 학대 받고 있어요!!

내가 악명 높은 악마견이라고 하지만 미유키 카즈야는 인간으로써의 됨됨이가 되지 않는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 주인 아들의 덜떨어진 녀석이 그리울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말이다. 이놈이야 말로 진정한 악마임이 분명하리라.

결정적인 패배의 요인으로 사료가 그러했다. 이 집에 올 때 받아온 사료가 다 떨어지고 미유키 카즈야가 새로운 사료를 사가지고 온 것은 2천 엔짜리의 사료였다. 늘 먹던 것도 아니고 싸구려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먹지를 않으니, 녀석은 별 개의치 않은 듯 먹지 않은 사료를 다시 봉지 안에 넣어두었고, 배고픔에 지랄 거리기도 전에 녀석은 날 가두었다. 그리고 다음 식사시간이 되어 날 꺼내더니 다시 그 사료를 준비하여 내밀었고, 그래도 내가 먹지 않자 녀석은 날 거칠게 잡아챘다.

“이 똥개새끼가 먹는 게 귀한 줄 모르고 계속 깝치지? 어디 한 번 누가 이기나 보자.”

어라, 이게 아닌데? 가둬진 방 안에서 낑낑 울면서 문을 긁으면 밖에서 문을 쾅 치며 ‘조용히 안하면 안 꺼내준다’라는 녀석의 협박에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렸다지. 하루정도는 어떻게는 참을 수 있었다. 훗, 그래 누가 이기는지 해 보자고!! 그리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서야 문이 열렸을 땐 배고픔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 나에게 녀석이 다시 2천 엔짜리 사료가 담긴 그릇을 내밀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것을 입에 대었다.

나의 패배였다.

집 주인 아저씨는 한 달에 한 번 일요일이 되는 주말에 집에 왔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이었다. 아저씨는 조금 무뚝뚝하긴 했지만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저를 끌어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기까지 하니, 인간의 손길이 이렇게 따뜻했던가 싶을 정도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간식으로 캔까지 사다 주기도 하니, 이 보다 더 좋을 리가 있겠는가! 물론 간식 또한 오가닉 유기농으로 만들어진 재료가 아니면 보지도 않았으나, 상황이 변해버리고 나서는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있는 날이면 녀석도 얌전해 져서는 내가 설쳐대도 그냥 넘어가지만 아저씨가 없는 그 다음 날이면 괴롭힘이 심해져서 요즘엔 적당히 설치는 정도로 지내고 있다.

나는 아저씨가 없는 사이에 녀석의 행동거지를 어떻게든 아저씨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무를 가지게 되었다. 말해 봤자 어차피 개 짖는 소리겠지. 내 눈이 카메라 렌즈가 아닌 것이 얼마나 한탄스러운가!

녀석의 하루 일과를 보면 평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동네 런닝을 한다. 처음엔 어딜 다녀오나 싶었으나 종종 제 목에 목줄을 채우고 나가기 때문에 녀석이 아침 운동을 한다는 것을 알고, 또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나로 써는 나쁘지 않았다. 스포티한 옷차림에 평소 쓰는 안경이 아닌 스포츠 안경으로 바꿔 쓴 모습은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은 익숙해 졌다.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다. 아침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학교를 다녀 온 후가 중요했다. 처음엔 어떻게든 녀석에게 이겨보려, 녀석이 학교간 사이에 일을 저지른 찌질 한 짓도 했으나 결국엔 녀석이 학교에 가있는 사이에 독방이 되어버린 방에 갇혀서 하루 종일 있는 것을 몇 번이고 겪고 완전히 패배하고 나서는 그냥 얌전히 집지키는 개가 되었더랬다.

아니, 말이 옆으로 좀 샜군. 중요한 건 녀석이 학교를 다녀 온 후다. 나를 완전히 굴복시킨 후 부터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세 네 번은 꼭 선배건 친구건 간에 우르르 몰려온다.

난 이 자식들이 정말 싫다.

“캬하! 뭐냐 이 개새끼는?”

“아버지가 나보고 얌전하게 지내라고 아는 사람한테서 입양.”

“캬하하하하, 개새끼 기른다고 얌전해 지냐?”

“이거 무슨 종류냐?”

“코카스파니엘이요.”

“이름 더럽게 기네.”

처음 이 녀석들을 보았을 때 전 주인 집 아들 친구들처럼 생각한 내가 너무나도 후회가 되었다.

끼리끼리 논다고, 전 주인 집 아들놈이 멍청해서 그 친구 놈들도 멍청한 애들뿐이었다면. 이놈들은 달랐다. 미유키 카즈야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이놈과 어울리는 녀석들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또라이 자식들이었다. 이 또라이 자식들 중 제일 상 또라이 몇 명을 소개해보자 한다.

“캬하하하 오늘도 내가 1등!”

tv앞에 한데 모여앉아 게임기를 들고 기쁨의 웃음을 짓고 있는 쿠라모치 요스케. 미유키 카즈야와 동갑으로 친한 듯 친하지 않은 듯한 그런 사이 인듯. 별명 못치. 본인은 못치라는 별명이 싫은 모양이었으나 선배에게 들으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으아아아!! 다 죽어 버려!!!!”

기합은 좋으나 게임을 더럽게 못하고 있는 녀석은 이사시키 준. 미유키보다 한 학년 위의 선배로 턱에 난 수염이 인상적으로, 잘은 모르겠으나 스피릿으로 불리 우고 있고, 본인은 엄청 싫어해서 별명 한 번 잘 못 불렀다간 뼈도 못 추리는 것을 봐서 보통 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여기 무리들 중에서 제일 인상이 더럽다.

“…흐음, 오늘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군.”

“하하하,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선배. 오늘도가 아니라 매번이겠죠.”

게임하는 무리들과 달리 한 곳에서 진지하게 장기를 두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지루한듯 상대하고 있는 미유키와 유우키 테츠야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유우키 테츠야. 무리들 중 유일하게 얌전한데 이상하게 진지한 녀석으로,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가 있어서 틈을 엿보기가 힘드나, 미유키가 놀려먹듯 상대하고 있는 걸로 보아선 분명 만만한 상대임엔 틀림없다고 단정 지었다. 그래도 쉽게 다가갈 수가 없다. 시선이 마주치면 그냥 온 몸에 땀이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 무리들 중 제일 상 또라이 셋의 소개를 끝으로, 다른 놈들도 몇몇 만만찮아 보여서 어떻게든 틈을 발견하기 위해 관찰했다. 게 중에 몇몇은 게임하다가 지 차례가 아니다 싶으면 나에게 와서 무슨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처음엔 같이 놀아주는 건가 싶어서 강아지이기도 하니, 녀석들의 장단에 맞춰 어울려 주다가 방심한 사이에 주도권을 잡을 생각이었다. 그렇다. 녀석들이 술 먹고 주정부리기 전까지 말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모여서 게임하면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집으로 귀가하는 날도 있으나, 술을 사가지고 와 늦은 시간까지 눌러 앉아 있는 날도 있고, 심하면 하룻밤을 지내고 갈 때도 있었는데. 나와 처음 만난 날 그들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술에 취한 쿠라모치는 술을 마시면 더욱더 시끄러웠고, 술이 들어간 놈들 중 ‘그나마’ 가장 멀쩡하다고 생각했다.

“개도 먹는 고기가 된다고 들었는데 진짭니까?”

쿠라모치의 술에 취에 제정신이 아닌 놈들에게 물었으나 그 질문에 한 학년 선배인 유우키 테츠야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함 끓여봐.”

“그럴까요?”

응? 술이 들어가자 한사람씩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며 우위를 점령하던 것을 망설이고 있던 차에 쿠라모치와 유우키의 대화는 나를 지옥의 구렁텅이 속에 빠트렸다. 저에게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음을 느끼며 도망치려 하자 갑자기 제 몸을 끌어당기는 손길에 발버둥 치자 제 몸을 끌어안는 손길이 더욱더 강해진다.

“흐..흐으- 흐으으윽-”

놀라서 어떻게든 도망가려 발버둥 치다 우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몸부림치던 것을 멈춘 채 저를 끌어안은 이의 얼굴을 확인하자 유우키와 동갑인 이사시키 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하, 으흐, 예삐야~”

이 미친, 뭐라는 거냐. 평소 미간에 주름을 만든 채 화를 내고 있는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에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고 느껴지는 순간 쪽, 하고 몸에 닫는 이질적인 감각에 몸이 부르르 떨린다.

‘쪽, 쪽, 쪽-’

끼아아아아아!!!! 이 새끼 지금 뭐하는 거야?! 이거 성희롱 아님?! 직장 내 여성 성희롱 같은 거 아님?! 울면서 미친 듯이 내 몸에 뽀뽀를 해대는 이사시키의 행동에 낑낑- 거리며 가까스로 벗어나자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코미나토 료스케와 그 옆에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탄바 코이치로를 바라보았다.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코미나토가 고개를 돌려 제 쪽을 바라보자 저도 모르게 몸이 흠칫한다.

“그니까 대머리라고 무시하지 말라 이 말이지. 무슨 뜻인지 몰라?”

“……너도 털 다 깎아 볼래?”

“내가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거냔 말이다. 안 그래?”

탄바는 분명 코미나토를 향해 말하고 있는데 코미나토는 나를 향해 말을 걸고 있는 상황이 코미디 같으나 코미나토가 나에게 한 말은 절 대 코미디가 될 수 없다. 나의 이 아름다운 털을 깎겠다고?! 이 둘도 마냥 평범하지는 않은 기운에 물러서자 제 위로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에 고개를 드니 쿠라모치와 유이치가 눈에 들어오고 저를 잡으려는 행동에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개의 직감도 인간의 직감과 같을지는 모르겠으나 내 직감으로 써 느낀 것은 저 두 사람이 술에 취에 있어도 눈은 진지하다는 것. 조금 전에 끓여보라는 유우키의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고 진지하게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미유키 카즈야!!!! 사람 살려. 아니 나 살려!!! 나 좀 살리라고!! 이미 널부러져 있는 몇 명을 제쳐 냄새로 미유키가 있는 곳에 가까이 다가가니 널부러진 놈들과 같이 누워 이미 꿈나라로 가있는 모습에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이 자식 술 존나 약해!!!!

미유키 카즈야의 주변에 정상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엔 녀석들의 장단에 맞춰주느라 고역이었고, 술을 마시는 날엔 어떻게든 눈에 띄지 않게 숨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자식들은 지치지도 않는 거냐?! 그리고 미유키는 내가 누구랑 어떻게 어울리고 있든 상관없다는 듯 무리들과 어울려 게임을 하거나 비아그라 잡지를 보며 야한 음담패설을 나누거나 요즘 유행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등등. 전 주인 아들과 별 반 다를 바 없이 놀기 바빴다.

그래도 놀라운 것은 자기가 해야 할 공부는 착실히 한다는 것이었다. 녀석들이 오지 않는 날엔 방에서 과제와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학생의 본분을 충실히 실행한다고 생각은 하나 미성년자가 술이라니!! 아저씨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시는가 몰라.

잘은 모르겠으나 미유키의 무리들이 가끔씩 미유키를 몰아세우며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녀석은 자기 관리에 꽤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그러한 것 같다고 생각 된다. 전 주인 아들놈은 거의 인스턴트 음식의 간식을 입에 달고 살며 운동은 일절 하지 않았고, 집안에서 뒹굴거리며 게임만 하는 탓일까. 아주머니와 닮아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정말 새하얀 돼지 같다고 생각된다면. 이쪽은 오히려 잔 근육이 있는 몸매였다. tv에서 흔히 몸짱이라고 불리우는 남자들 정도는 아니나 샤워를 하고 상체를 드러낸 몸을 보면 역삼각에 희미하게 복근이 보일 듯했다. 인간의 남자 경우 20대까지 몸의 변화가 있다고 하니, 이 녀석은 몇 년 후엔 분명 지금 보다 더 좋아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더욱이 중요한 것은 한 달에 한 번 어느 날의 토요일이었다. 인간 남녀의 교미를 라이브로 시청한 나는, 처음엔 저 둘이서 무얼 하는지 몰라서 그저 어리둥절했다. 또래로 추정되는 여자애를 데리고 와 방에 들어갔고, 여자애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깔깔깔 웃는 소리가 한 동안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분위기가 미묘한 기류로 바뀌어 이상하다 싶은 생각에 살짝 열려 있는 방안으로 들어갔더랬지.

침대 밑에 어질러진 옷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 다음 침대 위에 알몸으로 끌어안고 있는 미유키와 여자애가 보였다. 쪽, 하고 알 수 없는 민망한 소리가 들리면서 평소 싸 한 공기가 가득한 미유키의 방안이 후끈 달아오르고, 공기 중으로 흐르는 비릿하면서도 미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함과 동시에 거친 신음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격렬해지는 움직임에 여자애가 좋다고 교성을 지르는 소리가 내 귀속을 시끄럽게 때린다. 그래 너도 남자라 이거지? 여자애는 잘 모르겠고, 미유키를 보아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흥분한 모습이 오히려 생소해서 솔직히 말해서 놀랐다고나 할까. 안경을 벗은 채 구슬땀을 흘리며 얕은 신음을 흘리는 모습이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매달 한 달에 한 번 씩 데리고 오는 여자애들이 다 달라서 저 놈이 진짜 보통 내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지. 혹시 실수나 하지 않을까 어느 날은 거실에 내팽겨 둔 가방 속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콘돔을 입에 물고 손수 방까지 가져가 침대 위로 얼굴을 빼꼼 내미니 녀석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선 입에 물고 있는 콘돔을 거칠 게 빼앗고선 나가라며 얼굴을 퍽 치면서 ‘개새끼가 함부로 콘돔 가져가고 지랄이야.’라고 욕을 중얼거린다. 이 새끼가, 걱정해줘도 지랄이야. 지가 못 챙긴 주제에.

그래, 내가 녀석을 걱정해서 무슨 득이 있겠나. 나 같은 영리한 개를 못 알아보는 저 놈이 멍청한 거지. …괜히 아저씨가 더 그리워진다.

운동의 경우 아침엔 동네를 달리는 것뿐이나 주말의 경우엔 근처 공원을 주로 달렸다. 아침 뿐만이 아니라 점심을 먹고, 한 시간의 휴식을 취한 후였다. 그리고 녀석이 유일하게 나에게 옷을 입혀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겨울옷인가 아닌가로 구분하여 입혀주는 것뿐이었다.

하긴 내가 녀석에게 세심한 것까지 신경써주길 바라는게 멍청한 짓이지. 그래도 나름 꾸미고 나가는 덕에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목줄을 매고 목줄을 쥔 손이 단단하게 고정된 미유키의 손을 보면서 가끔씩 녀석이 나를 놓아주면 그대로 도망가서 새로운 주인을 찾아보고 싶다는 모험도 생각해 보았다. 그래, 날 왕으로 모셔줄 주인을 말이다. 아니 왕이되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미유키 카즈야에게만 벗어날 수 있다면!!! 귀여움과 함께 나의 울 것 같은 눈망울에 반짝임만 더해준다면 누구든 주워주지 않겠는가!

그것이 몇 번 상상으로 이어지다보니 이제는 거의 진심이 되기까지 해서 호시탐탐 녀석이 목줄을 잡은 손을 놓기를 빌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녀석.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절대 밧줄을 놓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래도 어떻게든 기회를 노리고자 녀석과 같이 뛰면서도 시선을 밧줄을 쥔 녀석의 손을 보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미유키와 그의 무리들과의 생활에 시달리며 거의 울 지경에 이르고 있던 어느 겨울 날. 나는 악마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한 천사와 만났다.

2월의 겨울. 미유키의 집에서 지내게 된 지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개의 인생을 누가 알아줄까. 진정 이 악마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해 줄 천사님은 없는 것인가. 아아- 하긴, 악마견이라 불리는 나를 구제해 줄 천사는 없는 게 당연한가. 왜 나는 악마견으로 불리는 건가!!!

“어이, 어디가냐 임마.”

어래? 늘 가는 코스로 가는게 아닌가? 어느 때와 다름없이 주말이 되자 오후에 들어서 공원을 뛰며 점점 추위보다 더위를 느끼기 시작할 때 쯤 미유키가 자신이 뛰어가는 방향을 제지하듯 목줄을 잡아당기는 감각에 깨갱한다. 이 자식아. 좀 조심해서 잡아당기면 안되냐? 목 졸라 죽일 일 있어?!! 화가 난 얼굴로 녀석을 올려다보며 노려보지만 그런 제 시선에 꿈쩍도 안하는 녀석을 보니 그냥 배알이 꼴린다. 진짜로 목줄 놓는 순간 나 그냥 도망가 버린다. 진심이라고.

미유키가 향한 곳은 한 동안 공사 중이라는 푯말과 함께 바리게이트가 되어있던 곳이었다. 뭐야, 이제 사람이 지나다녀도 되는 거야? 그 길로 들어서자 블록으로 된 길을 가운데로 양 쪽으로 나무들과 수풀들이 이루고 있었다. 봄이나 여름이면 온통 새파란 잎들로 가득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미유키를 따라 열심히 뛰니, 작은 연못과 함께 벤치들도 보이고, 아직 겨울이라 보이지는 않지만 꽃이 필 화단들까지 군데군데 보인다. 오오, 잘 꾸몄는데?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건 미유키가 줄을 놓느냐 안 놓느냐에 있다. 이 자식 틀림없다. 내가 도망갈 거라는 걸 눈치 채고 있는 건지도 몰라. 하긴, 나올 때마다 쳐다보고 있는게 목줄을 잡고 있는 미유키의 손이요. 놈이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건가. 게다가 이런 공원에 오면 자신의 주인들과 함께 나온 개들이 제 외견을 뽐내며 자랑하거나 이성을 유혹하는데 신경이 쏠리기 마련이건만, 나는 남의 시선을 위해 내 고귀함을 유지하면서도 신경은 온통 미유키의 손에 쏠려 있으니, 이따금 제게 먼저 다가오는 암컷들이나 귀엽다고 달려드는 애새끼들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오히려 짜증만 날 뿐이었다.

그러나 미유키는 어떤가. 개의 시선으로 보는 내가 봐도 참 잘난 놈이다 보니 가끔 같은 학교 학생으로 추정되는 여자애들이나 애완견을 무기로 접근하는 여자들이 다가오면 거절하지 않고 상대를 하고 있으니… 사실은 그 틈에라도 도망가보려 하지만 녀석은 목줄을 쥔 손에 절대 힘을 빼지 않았다. 아무튼 대쉬해 오는 여자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는 녀석이라 이거다. 그리고 후에 쿠라모치가 이사시키에게 신나게 떠드는 말에 의하면 이 자식, 어장관리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해 놓는다더라. 그래서 매달 집에 데리고 오는 여자들이 달랐던 거였어. 그리고 그 중에 몇 명은 공원에서 몇 번 본적이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이런 걸 능력자라고 하는 건가. 아니지 그냥 몸 함부로 굴리는 거지 뭐.

오늘도 어김없이 뛰고 있는 와중에 같은 학교 여자애로 추정되는 여자가 미유키에게 반갑게 인사해왔다. 동시에 그 여자의 가슴에 폭 안기고 있던 암컷의 푸들이 저를 바라보았고, 눈을 마주치긴 했으나 흥, 하고 새침을 떠는 모습에 정떨어져 제 목줄을 잡고 있는 미유키의 손만 빤히 바라본다. 가끔씩 마주치는 여자애다. 이름은 뭐였더라…. 아무튼 저 푸들은 꼭 저를 보고 새침 떨더니 내가 관심이 없으니 나중엔 똥 줄 타듯이 보는 암컷이다. 미안하다만 너는 진짜 내 타입이 아니다. 아니, 주인인 여자애의 취향인건지 솜사탕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는 걸보면 진짜 털을 다 뽑아서 털만 뭉쳐서 목도리 짜는 실로 만들어주고 싶다.

“오늘도 열심히네!”

“어… 뭐. 그렇지.”

“자, 목마르지 않아?”

“아니, 별로….”

“이거 연류차라는 건데, 혈액순환에도 좋고, 성인병에도 좋다나? 남자들한테 특히 좋대.”

아니 여자애가 왜 남자한테 좋다는 연류차를 보온병에 가지고 계신가요? 남자한테 좋다는 말이 거슬리는 건 내 기분 탓인가? 앞발로 한 쪽 귀를 탈탈 털며 얼른 뛰고 집으로 가자는 귀찮은 마음이 들기 시작할 때 였다. 미유키가 여자애에게 어쩔 수 없다는 듯 보온병을 받아들고 뚜껑을 열 때였다. 제 목줄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지고, 줄이 스륵- 풀리는 것이 눈에 들어오자 저절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앞을 향해 달려나가자 줄이 완전히 미유키의 손에서 벗어나고, 뒤에서 저를 부르는 미유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헉, 미유키에게서 벗어나려면 지금이 기회다!! 지옥에서 살고 싶지 않아!! 일단은 도망가고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고 있자 뒤에서 저를 부르는 미유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무서워서 뒤도 못 돌아보겠다. 그렇게 혀를 내밀며 헉헉 거리기를 수십 분. 뛰던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다행이 미유키의 머리카락 하나 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 그 녀석 스냅백 쓰고 있었던가. 알게 뭐야 그 녀석이 없다는게 중요한데!!

야호~! 그나저나 이제부터 어떡하지? 지나가는 사람을 유혹하려니 사람이… 없다. 그러고 보니 하늘은 이미 해가 지려 붉은 색을 띄기 시작하고 있었고 곧 저녁이 되어가고 있었다. ……저녁시간이다. 이런… 제기랄. 꼬르륵- 갑자기 배도 고프네. 도망치기 위해선 시간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었다. 게다가 점심을 먹고 그렇게 뛰어다녔으니 금방 배고픈 것이 당연하다는 걸 잊고 있었다.

킁킁, 일단은 미유키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하자. 저를 쫓아오다가 지친 것이 분명하고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을 거라 추측한 나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일단 공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여러 입구들 중 가까이 있는 입구로 달려나갔다. 왠지 이 공원을 벗어난 순간 완전한 해방감이 나를 반겨줄 것만 같아! 마치 악마가 지옥을 벗어나 천국을 향하는 계단처럼!!

‘퍽’

“깽-”

막 공원을 벗어나려할 때쯤이었다. 너무 들뜬 나머지 공원에 들어오던 사람과 부딪혀 아파오는 통증에 몸이 튕겨 나가고 낑낑 거리자 부딪힌 사람이 놀란 듯 얼른 제게 다가와 제 몸을 조심스레 끌어안으며 물어왔다.

“괜찮아? 많이 아파?”

남자 목소리. 어떤 고추새낀가 싶어 이를 드러내 보이며 올려다 본 순간 큰 눈망울과 눈이 마주치고 날카로운 미유키의 인상과 달리 순한 강아지처럼 생긴 귀여운 얼굴과 함께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표정 뒤로 마치 눈부신 광채가 뿜어 나오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찾았다!! 이 애라면 분명 날 거둬 줄 거야!!! 인상 드러운 미유키와 전혀 다른 따뜻한 느낌에 아픔도 잊어버린 채 그의 따뜻한 가슴 속에 얼굴을 파묻고 부비부비한다. 뭔가 되게 폭신폭신한 느낌이다.

“하핫, 너 되게 애교 많은 녀석이네? 안 아픈 거냐?”

“끄응-”

아프지 않아요. 아니, 호- 해줘 호- 나 많이 아파. 전치 10년은 나왔을지도 모르니까 날 이대로 거둬가. 받아라!! 내 필살기! 눈빛 초롱초롱!! 내 울먹이는 표정을 보고 모르는 척 하는 건 또라이 미유키와 그 무리들 자식들 밖에 없다 이거야!

“어..음- 어쩌지? 너 주인은 없어? 목줄이 있는 거 보면 주인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없어없어없어. 나는 내 나름대로 주인이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으나 내 모습을 어떻게 받아 드린 건지 남자의 입에서 터무니없는 말이 튀어나와 나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주인이랑 떨어져서 슬픈 거구나? 이 형이 같이 찾아줄게!! 아, 그런데 수컷인가? 암컷?”

어떻게 받아 드린거냐!!!!!!!!! 어떻게 받아드리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야!!! 겨우 미유키 녀석에게서 도망쳐 왔다고! 알간?! 그런 제 마음을 모른다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저를 꽉 끌어안은 채 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남자의 행동에 발버둥 쳐 보려하지만 무슨 마력인지 안겨있는 품이 따뜻하고 폭신해서 떨어져 나갈 수가 없다. 이건 분명 날 책임지라는 하늘의 뜻이 분명하다. 우린 운명이 분명해. 게다가 따뜻한 냄새도 나고…. 이대로 날 품어주면 안될까? 아아- 천사님. 날 정화시켜줘. 날 천사견으로 만들어줘.

“어이!!”

“?!”

“음?”

헉, 남자의 품에 푹 빠져 있는 사이 숨이 차지만 낮게 울려 퍼지는 숨소리에 귀가 쫑긋하고 그제야 후각에 집중하니 익숙한 남자의 냄새에 몸이 점점 차갑게 식어간다. 미..미유키. 이 녀석 날 찾고 있었던 거냐. 똥개 취급하며 개의 존중 따윈 완전히 무시하는 주제에 날 그리 찾고 싶더냐!! 놓고 싶지 않은 뭔가라도 있는 거냐고! 은근히 내가 매력적이라던가? 저를 끌어안고 있는 남자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저절로 숨을 죽이고, 그 목소리에 저를 끌어안고 있는 남자도 반응한 건지 뒤를 돌아본다.

“거기 품에 안은 개새끼. 내 거 같은데?”

“아, 강아지 주인이심까? 찾고 있었슴다.”

“하?”

남자의 말에 미유키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도 미간을 찌푸린다. 흐음- 그런데 말투가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내 기분 탓인가. 그나저나 날 이대로 놓지마. 날 데려가 제발!! 여기서 도망가!! 저건 인간이 아닌 악마라고!

“저기 입구에서 발견했슴다. 의외로 빨리 찾아서 다행이네요!”

“어…응.”

“자, 여기 받으십쇼.”

미유키의 품 안으로 넘기는 손길에 저절로 기겁해서 발버둥 치자 남자가 놀란 듯 다시 제 품에 고쳐 안고서 한 손으로 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요, 저 놈 한테 죽어도 가기 싫어서.

“형이 걱정하니까 얼른 집으로 들어가자. 벌써 저녁이고 바람도 더 차가워져서 감기 걸려.”

아아, 이렇게 따뜻하게 말해주는 천사님이랑 같이 가면 안 될까.

“자, 얼른 가야지.”

끼잉- 남자의 품에 안도하여 방심한 사이 미유키의 품에 넘겨진 나는 결국 진심으로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신음했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에 아랑 곳 않고 제 목줄의 손잡이를 미유키의 한 손에 직접 쥐어준다.

“어, 손 많이 차갑네요. 아, 혹시! 강아지 찾느라?”

“……”

“잠시만 있어보십쇼.”

미유키에게 목줄을 쥐어 주면서 미유키의 손이 차갑다고 느낀 듯 남자가 입고 있는 코트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더니 곧 네모난 무언가를 꺼내어 미유키에게 쥐어주었다.

“이거, 손난로임다. 일회용이지만! 그럼, 안녕히가십셔!! 안녕 강아지!”

안돼!! 가지마 천사님아!!! 날 구원해줘야지!! 그렇게 멀어지는 천사님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서 있는 미유키 덕에 마음속으로 울며 계속 천사를 부르짖었다. 이 녀석의 품에 안긴 건 처음이지만 천사님처럼 따뜻하지도 폭신하지도 않구려!!! …그나저나 이 새끼는 언제까지 날 안고 있을 작정이야? 멍하니 서 있는 미유키의 모습에 의문이 든 나는 그대로 녀석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좀 전 까지만 해도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녀석의 표정이 여태껏 보지 못했던 멍한 표정이었던 지라 혹시나 싶은 생각으로 녀석의 품안에서 도망가려 했지만 오히려 숨 막히게 끌어안아준 탓에 그대로 집에 돌아왔다. 이렇게 잠깐의 일탈은 다시 미유키에게 돌아오게 된 것으로 실패가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로 내 마음속에 기록으로 남았다. 끄으으으으!!!!